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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이터 시대, 공공기관의 현주소

CORNERMAN 2026. 4. 23. 17:20

순환보직 구조와 데이터 업무의 구조적 괴리

2023년 기준,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와 수백 개의 산하 공공기관에는 '데이터’라는 이름이 붙은 부서나 담당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데이터 기반 행정 활성화에 관한 법률(약칭 데이터기반행정법)이 2020년 시행된 이후, 중앙부처는 물론 광역·기초 지자체까지 데이터 전담 조직을 설치하거나 기존 정보화 부서에 데이터 기능을 추가하는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테크노파크, 각종 진흥원, 정보원 같은 공공기관 역시 빅데이터센터를 설치하거나 데이터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부서를 신설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공 부문 전체가 데이터 시대에 발맞추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조직 안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풍경이 사뭇 다르다. “작년까지 건축허가 업무를 했는데 갑자기 데이터 분석 담당이 되었다”, “빅데이터센터에 발령받았는데 데이터가 뭔지도 모르겠다”, "전임자가 남긴 인수인계서에 적힌 용어부터 이해가 안 된다"는 하소연은 현장에서 너무나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 현상의 근본 원인은 공무원 인사 체계의 핵심 원리인 순환보직에 있다. 순환보직은 공무원이 특정 부서에 오래 머물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패와 매너리즘을 방지하고, 다양한 행정 경험을 쌓게 하려는 취지에서 운영되는 제도다. 통상 2년에서 3년, 짧으면 1년 만에 보직이 바뀌기도 한다. 일반적인 행정 업무에서는 이 제도가 나름의 순기능을 발휘하지만, 데이터 업무처럼 전문성의 축적이 핵심인 영역에서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만들어낸다.

데이터 업무는 본질적으로 학습 곡선이 가파르다. 데이터의 종류와 특성을 이해하고, 어떤 데이터를 어디서 확보할 수 있는지 파악하며, 분석 결과를 정책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감각을 갖추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막 이런 감각이 형성될 무렵 보직이 바뀌고, 새로 부임한 담당자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데이터 부서는 항상 초보자가 운영하는 셈이 되고, 기관 내 데이터 활용 역량은 좀처럼 쌓이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치부할 수 없다. 순환보직은 개별 공무원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만들어낸 구조적 조건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공무원이 데이터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데이터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구조와 관점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을 이 책 전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데이터 분석부서인데 분석은 안 한다?” — 공공 데이터 조직의 실제 역할

 

공공기관의 데이터 관련 부서에 처음 배치된 담당자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혼란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데이터 분석’이라는 단어가 부서명이나 업무 분장에 들어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직접 데이터를 다루고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파이썬이나 R 같은 분석 도구를 배워야 하는 건 아닌지, 통계학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공공기관 데이터 담당자의 핵심 업무는 직접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 데이터 조직의 실제 업무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분석과제를 도출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며, 셋째는 분석을 수행할 전문 업체를 선정하고 과제의 진행을 관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공기관의 데이터 담당자는 분석의 실행자가 아니라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기획자이자 관리자에 가깝다.

이것은 공공기관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지자체나 공공기관에는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고급 기술 인력이 상주하지 않는다. 설령 분석 역량을 갖춘 직원이 있다 하더라도 순환보직으로 인해 그 역량이 조직 내에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따라서 분석의 실행은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실제로 그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경기도 양평군은 NICE지니데이타와 같은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여 대중교통 버스 노선 효율화 분석을 수행한 바 있다. 이 과제에서 양평군의 데이터 담당 부서가 한 일은 버스 노선에 대한 주민 불편 사항과 지역 교통 현안을 파악하여 분석과제를 정의하고, 개인 속성데이터와 이동데이터의 가명 결합이라는 분석 방법론의 큰 방향에 합의하며, 과제 수행 과정에서 관련 부서와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실제 데이터의 수집·가공·분석·시각화는 전문기관이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순환버스 신규노선 도입, 기존 노선 효율성 검증, 대중교통 편의시설 신설 제안 등 구체적인 정책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런 역할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역할에 대한 오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나는 "나는 분석을 못 하니 이 업무를 잘할 수 없다"는 불필요한 위축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분석하겠다며 전문성 없이 데이터를 만지작거리다가 엉뚱한 결과를 내는 위험이다. 공공기관의 데이터 담당자에게 정말 필요한 역량은 코딩 능력이나 통계 지식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데이터로 풀 수 있는지 판단하는 감각,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시야, 그리고 외부 전문기관과 효과적으로 협업하는 관리 능력이다.


과제 도출이라는 첫 번째 난관

공공기관 데이터 담당자의 역할이 분석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라면, 그 출발점은 분석과제를 도출하는 일이다. 그런데 바로 이 첫 단계가 가장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분석과제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만들어진다. 하나는 기관 내 다른 부서에서 데이터 분석이 필요한 업무를 요청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현안이나 지역 이슈를 데이터 담당 부서가 자체적으로 발굴하여 과제화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두 경로 모두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쪽도 쉽지 않다.

먼저 타 부서의 요청을 받는 경우를 살펴보자. 공공기관은 민간 기업에 비해 조직 문화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기존에 하지 않던 새로운 방식의 업무, 특히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부서는 많지 않다. “우리 부서 일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 “분석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기존에 이렇게 해왔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그나마 요청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민원이 많은데 해결해달라”, "우리 지역 인구가 줄고 있는데 분석해달라"처럼 데이터 분석으로 명확한 답을 내기 어려운,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모호한 주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현안 기반의 자체 과제 발굴 역시 난관이 적지 않다. 데이터 담당 부서가 "우리 지역의 관광 활성화 방안을 데이터로 분석해보겠다"고 과제를 설정하면, 정작 관광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자신들의 영역에 다른 부서가 개입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분석 결과가 기존 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련 부서의 협조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사회현안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복합적이어서 데이터 분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는 것도 경험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일부 기관에서는 데이터 부서가 연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 건수를 채우기 위해 형식적인 분석을 반복하거나, 매년 비슷한 주제를 약간만 바꿔서 수행하는 관행이 생기기도 한다. 데이터 분석이 실질적인 정책 개선으로 이어지기보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난관을 잘 넘긴 기관의 사례는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연안지역의 경제와 관광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기관 본연의 연구 목적에서 출발하여, 민간 빅데이터를 정기적으로 구매·가공하고 모니터링 플랫폼으로 구축하는 과제를 설계했다. 이 과제는 일회성 분석에 그치지 않고, 카드소비 데이터와 이동체류 데이터의 가명 결합을 통해 연안 관광의 테마별 특성을 분석하거나 도시형·어촌형 연안의 관광행태 차이를 비교하는 등 매년 새로운 분석 주제로 확장되었다. 과제 도출의 핵심은 거창한 주제를 잡는 것이 아니라, 기관이 이미 수행하고 있는 업무나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에서 데이터가 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질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데이터를 잘 쓰는 기관과 못 쓰는 기관의 차이

 

같은 제도적 환경, 비슷한 예산 규모, 유사한 인력 구조를 가진 기관들 사이에서도 데이터 활용의 수준은 놀라울 만큼 큰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술력이나 예산이 아니라 데이터를 대하는 관점과 운영 방식의 차이다.

데이터 활용을 잘하지 못하는 기관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 데이터 분석을 일회성 이벤트로 취급한다. 한 번 분석 용역을 발주하고 보고서를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이 실제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추적하지 않고, 분석에 사용된 데이터와 방법론이 다음 과제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도 고민하지 않는다. 둘째,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빅데이터를 구매했다"는 사실이 성과가 되고, 그 데이터가 실제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였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셋째, 담당자가 바뀌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전임자의 경험과 네트워크가 후임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매번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반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기관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취한다. 이런 기관들은 데이터 분석을 지속적인 모니터링 체계의 일부로 설계한다. 양평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양평군은 2021년부터 NICE지니데이타와 협력하여 대시보드형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2024년까지 지속적으로 운영·확장해왔다. 이 시스템은 양평군청 각 부서가 보유·관리하는 데이터와 민간 빅데이터를 결합하여 지역 현황을 시각화하고, 분석 결과를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핵심은 이 시스템이 한 번 만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석 과제의 결과가 계속 시스템에 반영되는 확장형·지속형 구조로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시스템 자체가 기관의 데이터 활용 역량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런 기관들은 외부 전문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단발성 계약이 아닌 중장기적 파트너십으로 관리한다. 제주테크노파크는 2022년부터 지속적으로 제주 지역경제 데이터를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제공받아 빅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확보된 소상공인 음식 가격 정보와 카드결제 데이터는 제주 지역의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데이터 기반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공개되고 있다. 단순히 데이터를 사서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지역 경제 생태계 안에서 순환하며 가치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데이터를 잘 쓰는 기관과 못 쓰는 기관의 차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잘 쓰는 기관은 데이터를 '기술’이 아니라 '업무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못 쓰는 기관은 데이터를 '특별한 프로젝트’로 취급한다. 데이터가 기관의 일상적 의사결정 과정에 스며들어 있으면 데이터를 잘 쓰는 기관이고, 데이터가 별도의 프로젝트로만 존재하면 아무리 큰 예산을 투입해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 장에서 살펴본 공공기관의 현주소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순환보직이라는 제도적 제약 속에서도, 데이터 전문 인력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낸 기관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데이터 담당자가 분석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는 현실을 인정한 위에서, 대신 과제를 잘 설계하고 데이터를 잘 확보하며 외부 전문기관과 효과적으로 협업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구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내일 당장 데이터 관련 부서에 발령받더라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누구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 다음 장에서는 이 논의의 토대가 되는 공공 데이터 활용의 정책적·제도적 환경을 살펴보겠다.